嘉卉 . 嘉人 (가훼 . 가인) 그리고...
또 가을을 맞이합니다.
마당엔 봉숭아, 맨드라미가 꽃불을 밝힙니다.
여름은 늦도록 심술궂은 장대비를 뿌렸고, 시도 없이 애기비 또한 줄창 내렸습니다.
가을은 또 이렇게 곁에 왔지만 더듬어 지나온 유년의 기억속 사진첩과는 풍경이 퍽 많이 변했습니다.
산은 아픔 속에서 나날이 푸르름이 장해져 왔지만, 강은 직선화되었고, 갈대는 베어져 강둑은 돌과 시멘트 옹벽 속에 가두어졌고 찬성과 반대의 분열로 얼룩진 구호의 현수막이 어지러운 세상의 단면을 극명하게 보여주고 있습니다.
람천의 수달이 사람들의 돌팔매로부터 자유롭고, 새끼를 가진 고라니나 너구리가 자동차 바퀴아래 슬픈 눈으로 죽어가는 그런 세상에서 안도하는 그대와 우리가 원하는 생명평화의 세상은 이 가을 어디에도 아직 보이지가 않습니다.
들녘은 가을걷이를 앞둔 농부들의 손길이 바쁘고, 뿌림과 가꿈과 보살핌의 내력을 아는지 들판은 황금색으로 물들고 있습니다.
그 여름 농부들의 삶은 장대 폭우 속에, 모진 바람 속에 위태롭게 서 있는 한 그루 장엄한 고목이었습니다.
嘉卉(가훼) 아름다운 꽃
“곱사등이 춤”이라 시인 이월란이 노래합니다.
“내가 춤을 추네.
가슴 휘어꺽인 가훼 한 그루 등에 지고
갈마의 사슬 지으려 춤을 추네.”
그렇습니다. 농부는 가훼 “그 아름다운 꽃”을 가꾸기 위해 嘉人의 모습으로 그 여름을, 이 계절을 이 땅의 변방에서 굵은 땀방울로 보냈습니다. 우뚝 선 고목으로 수많은 작은 그러나 아름다운 풀들을 가꾸기 위해 아름다운 사람으로 살아왔습니다. 세상의 한 귀퉁이에서 온 몸으로 싹을 틔워 생명의 끈을 잇는 풀, 한 알의 나락이든, 배추나 무, 푸성귀로 말하더라도 온전히 제 몸을 주는 무량의 보시. 가히 가훼라 하여도 제 품위를 낮추지 않는 생명의 풀이라 대접받을 만할 일이지요.
또한 세상 생명들의 먹거리를 가꾸고 지켜내는 일이야 더 말해 무엇 하겠습니까?
하물며 모두가 기피하고 박대하는 현실에 있어서야... 그래도 요즘은 대처 생활을 접고 귀농자가 눈에 띄게 많아졌다는 점이 조금은 위안으로 삼을 만합니다.
가을이 짙어 갑니다.
어디에서 무슨 꽃으로 피어 있어야 아름다운지 고민 같은 건 새삼 필요 없습니다. 꽃이 아니면, 이파리가 되던, 줄기가 되던, 뿌리가 된들, 그 어느 것 하난들 아름답지 않는 부분들이 있겠습니까?
참 많은 이야기를 안고 저만치 가는 여름을 배웅하고 가슴 뜨끈해지는 이유가 되는 가을을 맞습니다.
매년 오가는 손님이지만 해마다 느낌은 다릅니다.
장대비의 정열도 애기비의 겸손함에도 미치지 못하는 한낱 미물인 우리는 임시적 거처로 잠시 여기 머무는 건 아닐는지 자연의 숭고함과 위대함의 무게대신 깊은 배려로 소리 없이 깨닫게 합니다.
가을엔 하룻밤쯤은 잠들지 마십시오.
너무 많이 채워진 우리들 마음의 곳간 한켠쯤 비워두십시오. 모두가 잠든 이 밤 뜨락을 거닐며 풀벌레와 초목들의 이야기에 귀 기울여 그들의 얘기로 채워보십시오.
별의 미소에도 화답하고, 이 밤사 가훼. 가인들의 이야기가 전설처럼 물안개로 밀려드는데, 차 한 잔 하실까요? 차 뭐 별거 있습니까?
가을 이야기가 짙은 향기로 젖어드는 밤인데 아무 차라면 어떻습니까?
한 때의 격정과 열정을 낙엽으로 보낼 줄 아는 가을 깊은 나무처럼 씨줄과 날줄로 엮어가는 이 가을의 이야기가 침묵으로 다가옵니다.
가을입니다.
2011/11/26
-정 석 균-